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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화) 계6장_역사는 하나니의 심판과정

글쓴이 : 느헤미야강 날짜 : 2019-10-08 (화) 09:57 조회 : 29

요한계시록 6;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 과정

 

 

요한의 두번째 환상인 일곱 심판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입니다.

이 일곱 심판 시리즈는 모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처음 두 시리즈 즉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심판에서는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사이에 공통적으로 삽입장면(7장과 10~11)이 나오는데

이것은 심판 중에도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에서는 삽입 장면이 없는데

이것은 마지막 최후의 심판이 급속하게 진행될 것을 예견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두루마리를 받아 든 어린 양이 일곱 봉인을 차례로 떼어 냅니다.

첫 번째 봉인을 떼자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오너라!"하고 누군가를 불러 냈고(1),

흰 말을 탄 사람이 면류관을 쓴 채 활을 가지고 나옵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이기면서 나아가고, 이기려고 나아갔습니다"(2)라고 씁니다.

이것은 마지막에 일어날 전쟁에 대한 계시입니다.

둘째 봉인을 떼자 둘째 생물이 또 누군가를 불러 냈고(3)

불 말을 탄 사람이 큰 칼을 가지고 나와서 "평화를 없애는"(4) 일을 도모합니다.

"평화"는 로마 제국의 통치 이념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세운 평화는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봉인을 떼자 셋째 생물이 누군가를 불러 냈고,

그러자 저울을 든 사람이 검은 말을 타고 나타납니다(5).

그는 이 세상의 경제 질서를 무너뜨려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게 만듭니다(6).

넷째 봉인을 떼자 넷째 생물이 누군가를 불러 냈고(7),

사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청황색 말을 타고 나타났는데,

그의 뒤에는 지옥이 따랐습니다(8).

이 모든 것은 마지막 날에 이 땅에 일어날 전쟁과 기근과 역병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의 영원한 통치가 임하기 전에 그와 같은 환난이 먼저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떼려 할 때 사도 요한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9).

그들은 어린 양을 향해 언제 자신들의 원한을 갚아 주시겠느냐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10).

그들은 "흰 두루마기"를 한 벌 씩 받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아직도 더 쉬어야 한다"(11)는 응답을 받습니다.

어린 양의 영원한 통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당해야 할 고난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날이 가깝기는 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린 양이 여섯 번째 봉인을 뗄 때, 우주적인 대 격변이 일어납니다(12-14).

그러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굴과 산에 숨어서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숨겨다오"(16)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들이 어린 양의 진노를 대면해야 할 날이 다가 왔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7).

어린 양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무력하게 죽으셨지만 마지막에는 심판자로 임하실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음을 당한 사람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불의한 사람들은 어린 양의 진노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묵상:

당시 사람들은 로마의 군사력이 보장해 준 평화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로마의 군사력과 권력 그리고 경제력에 의존하여 안전망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최고의 대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무너질 것이라고 계시하십니다.

세상에 대한 통치권은 로마 황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임 당하신 어린 양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어린 양이 봉인을 뗄 때가 오는데,

그 때가 오면 인간이 세운 모든 것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안전한 것은 어린 양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늦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 의인들이 높임 받고 불의한 자들이 심판 당하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단지 초대교회의 역사적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 그리고 기독교 역사철학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역사의 과정에는 첫째 인부터 다섯째 인에 해당하는 모든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열쇠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인을 떼시는 분이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의 역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붙잡는 자는 그 마지막 무서운 심판을 이길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나의 왕은 누구인지 물어 봅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백성이 되어 이 땅에서 그분처럼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성민목사 2019-10-08 (화) 19:02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5:17

마지막 날에 온전히 설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산과 바다가 무서워 피하는 그날은 그 누구도 온전히 설 수 없다. 세상의 권력자, 부자, 힘있는 자들고 그날에는 모두 자신들의 몸을 숨기기 바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구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면 자신이 자칭 메시아라 부르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아마도 그날에는 그런 사람이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미 고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우리를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구원할 자가. 아마도 마지막 날을 주관하시는 이에게 답이 있을 것이다. 그분만이 이 모든 고난의
해답을 알고계실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일단 만나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니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피흘랴 죽은 자들을 선대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믿음의 자들은 예수님께서 그 날에 흰 두루마리를 주셨다. 그리고 쉬라 말씀하신다. 고난의 때에 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지 않는가. 고난이 그들을 지나가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해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언제 다칠지, 죽을 지 모르는 일 때문에 생명보험, 화재보험 각종 보험은 들면서 마지막 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을 위해서 왜 아무 보험도 들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보험이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것만이 마지막 날에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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