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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금) 눅20장_하나님의 아들이 당하신 모욕

글쓴이 : 느헤미야강 날짜 : 2019-03-15 (금) 11:05 조회 : 25

1. 1-19: 버림 받은 돌처럼


주님은 마지막 주간에 매일 성전에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이것은 당국자들과 유대인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9:47; 20: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직접 주님께 와서

무슨 권위로 이렇게 가르치는지 물었습니다(1~2).

주님은 이들의 질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라고 대답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을 아시기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그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인지 그냥 사람인지 물으셨습니다.

백성이 두려워서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약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백성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9~19).

이것은 당시에 흔한 부재 지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포도원의 소작을 맡기고 떠난 지주가 세를 받으러 종을 보내지만,

번번이 세 번이나 소작농들은 종을 때려서 내쫓았습니다.

지주는 아들을 보내면 말을 듣겠지 하고 아들을 보내지만,

소작농들은 도리어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이 될 줄 알고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법이 상속인이 없을 경우,

이전 3년 동안 그 땅을 경작하고 사용한 사람의

몫이 된다는 법에 기준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주인은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백성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자기들의 생각을 표현했는데,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16).


마치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듯이

주님은 버림을 받으시지만, 교회의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17).

이 돌은 모든 인생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주님이십니다(18).

문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표적 삼아 하신 말씀임을 알아들었다는 사실입니다(19).

하지만 그들은 회개로 반응하는 대신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마음과 태도로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늘 비극입니다.

 

2. 20-47: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당시 유대 자치 의회인 산헤드린에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허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로마 총독에게 정치범으로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첩자를 들여 보냅니다(20).

이들은 보다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편인 것처럼 가장하여

예수님을 넘어뜨릴 함정을 팝니다.


이렇게 접근해서 물은 질문은 로마 당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유대교와 로마 정부 사이에서 택일하라는 곤란한 질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간계를 아시고(23)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을 꺼내보라고 하시고 거기 새겨진 시저의 얼굴과

로마 문자들을 가리키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심으로써 이 질문을 피해가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국가의 세금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 면제될 수 없음을 가리키며,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제로 주님을 난관에 빠지게 하려고 했습니다(27~40).

그들은 일곱 형제가 자식 없이 차례로 죽음으로써

맏형의 부인이 차례로 동생들과 결혼을 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경우를 언급하면서

부활 후에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도전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후의 사람은 천사와 같이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며,

결혼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릴 것을 암시하십니다.

또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을 죽은 자로 묘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앞에 산 자로 묘사하심을 지적하심으로써 부활을 주장하셨습니다.

어찌 우리의 이성의 잣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셨습니다(41~44; 110:1).

다윗의 예언에서 다윗이 예수님을 가리켜

주라고 표현한 것을 해석하시면서

주님 자신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을지라도

실상 다윗의 하나님이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이렇게 음흉하고 교활하게

주님을 죽이려고 수작을 부리는 서기관들을

모든 백성과 제자들의 듣는 자리에서 공격하셨습니다(45~47).

그들은 긴 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에서 인사 받고 인정받은 것을 즐기며

회당이나 잔치 자리에서도 윗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의 주목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주님은 백성들에게 이들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을 사귀거나 본받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들은 돈을 사랑해서 과부들의 재산을 삼키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청산유수지만 그것은 오직 위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영광의 보좌에 계시고 천지와 사람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것은 인간들의 모욕과 멸시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싫어했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대접을 받으시면서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마치시기 위해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도

주인과 선생보다 낫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바로 이 주님에 대한 태도에 의해서

현세와 영원이 결정됩니다


이형원전도사 2019-03-16 (토) 05:45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눅20:19)"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도 어떤 이들은 그 말씀으로 인하여 오히려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 죽이려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그 말씀이 자신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회개하거나
혹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로 자신들을 책망하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오게 된 것을 보게된다.

이러한 자들은 또한 예수님을 잡으려 했으나 백성을 두려워 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 우리에게 들려 질 때 우리를 찌르기도 한다.
때로는 그 말씀으로 내가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면 기꺼이 그 말씀에 따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일은 회개하는 것이 믿는자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내 삶 속에서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지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을 더
의식하며 살아가는지 또한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먼저가 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 사람을
인식하는 일보다 먼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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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목사 2019-03-16 (토) 09:32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눅20:25

과거나 지금이나 십일조와 헌금에 대하여 고민하는 성도가 참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예수님께 직접 물어볼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조금은 분명하게 십일조와 헌금에 대하여 알 수 있게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였다. 예수님께서 대닶하시기를 동전에 새겨져 있는 것이 누구이냐? 라고 물으신 후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모든 물질은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의 것이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의 눈은 다르다. 이 모든 것들을 허락하시고 베푸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풀어보면 “가이사의 것으로 믿는 사람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려라”이다.

오늘날 나에게도 동일한 말씀이 선포되어 지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 헌금으로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소유된 모든 재물이 어디로 부터 왔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만물이 누구의 소유라는 것이다. 가이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냐? 나는 누구를 더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는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이 부디 나의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행위로 나타나게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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