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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목) 눅19장_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으습니까

글쓴이 : 느헤미야강 날짜 : 2019-03-14 (목) 11:29 조회 : 25

1. 1-10: 진정한 회개

주님이 여리고에서 만난 사람은 삭개오입니다.

삭개오가 세리장이고 부자라는 성경의 설명은

결코 명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2).

그는 로마의 앞잡이로서 민족을 배신한 세리들의 우두머리이고

그의 부는 다 착취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을 터.

그러나 그는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숨기보다는

그분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키가 작은 그는 군중들이 모인 길가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결코 점잖은 행동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 앞에서 오셔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에 유하겠다는 말씀은 거의 명령입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반응했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일로 인해서 수군거렸지만,

주님은 그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삭개오가 주님께 드린 말이 놀랍습니다.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주겠고

남의 것을 착취한 것이 있다면 네 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훔친 것에 대해서1/5을 더해서

보상하라고 명한 것에 넘치는 반응이었다(6:5; 5:7).

주님은 삭개오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이런 결심과 각오는 어디서 온 것인가?

믿음입니다.

18장의 부자 관원과 비교할 때,

이것은 재산의 전부냐, 일부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고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 삭개오를 구원하시려고

여리고를 찾아오신 것입니다(10).


2. 11-27: 맡겨진 사명이 신실하게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길에서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주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11).

주님은 이런 기대를 깨시려고 한 비유를 주셨습니다(12~27).

이 비유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주신 유일한 비유입니다.

헤롯왕이 죽고 그 아들 아켈라오가 왕위를 받기 위해서 로마로 갔을 때

유대인들은 헤롯이 왕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사절들을 뒤이어 몰래 로마로 보냈습니다(14).

이것 때문에 결국 아켈라오는

아버지 헤롯 대왕처럼 왕의 칭호를 받는데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너무 잘 아는 이 사건을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주님 자신을 가르키고 주님은 아켈라오처럼 실패하지 않으셨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여기 비유의 귀인은 떠날 때 열 종을 불러 각각 한 므나씩을 맡겼습니다.

귀인은 왕위를 받아 돌아왔다. 그리고 각 종을 불러서 결산하는데

한 므나로 열 므나로 만들거나 다섯 므나를 만든 종들에게

각각 열 도시와 다섯 도시를 차지하게 하였으나

한 므나를 그대로 둔 종에게는 큰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 종의 문제는 주인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것입니다.

그는 주인의 선함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주인이 자기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왕위를 받아서 올 것을 원치 않았고

그래서 한 므나를 그대로 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에 대한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귀인의 왕 됨을 원치 않던 모든 백성도 함께 죽임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심판의 예고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며,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입니다.

 

3. 28-48: 예루살렘에서

주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데,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십니다(30~35; 9:9).

스가랴의 예언을 기억하는 자들은 이것이 메시아임을

상징적으로 선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눈에 띄지 않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국자들이 주님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는 상황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기에 주님은 떠들썩하게

인파의 환영을 받으시면서 입성하십니다.

비록 주님을 환영한 인파가 십자가에 죽으시는 메시아 사역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때를 재촉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인파를 조용히 시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돌들이라도 소리질러 찬송할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당신이 찬송 받으실 분이심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40).

 

이때 주님은 특이한 행동을 하셨다.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은 눈이 먼 성입니다(42).

주님을 거부함으로써 심판을 자초한 눈먼 성입니다.

그들의 앞에 일어나게 될 심판을 보지 못하는 눈먼 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심으로써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당국자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의 주님을 죽이려는 적개심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백성들이 주님께 주목하고 있으므로

그들은 틈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비록 많은 백성이 주님께 귀를 기울였지만,

그들 대다수는 여전히 눈먼 백성들이었습니다.

 

묵상.

 

이런 눈먼 상황에서 삭개오의 믿음과 구원 이야기는

매우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나고 눈이 열렸고, 관대해졌습니다.

삶이 변했습니다.

우리도 삭개오와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인생을 사는 동안 관리하도록

시간과 물질과 건강과 온갖 것들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주님 앞에서 결산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 선하신 주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청지기의 삶을 충성스럽게 살고 있습니까?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으신지요?


김성민목사 2019-03-15 (금) 01:46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19:45-46

예수님의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하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며 기도하는 집이다. 그런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기도하는 곳이 될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은 과감하게 장사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다. 그러므로 다시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 되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몸과 마음의 성전을 혹시 장사꾼들에게 혹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거룩한 성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중요시 하고 그것들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만약 나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셨듯이 나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나의 몸과 마음을 거룩한 성전으로 회복시켜 주실 수 있으시며 그분만이 거룩한 집,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워주실 수 있다. 오늘도 예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룩한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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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원전도사 2019-03-15 (금) 12:26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8절의 말씀처럼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또 누구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고백한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삶의 모습이 달라지고
입술의 고백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을 만났고 믿는다고 하면서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 못된 일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바로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돕고
스스로 잘 못된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는 것임을 알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로 만났다면 우리의 관심사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는 과연 삭개오와 같은 믿음과 관심의 변화가 있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된다.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 더 이상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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