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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새; 요12;24 가정에서 밀알로 사는 법

글쓴이 : 느헤미야강 날짜 : 2020-02-29 (토) 23:04 조회 : 492

20200228() 3월을 위한 자녀축복 토요새벽 기도회

 

가정에서 밀알로 사는 법 <12:24>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책임지심과 예비하심의 은총 중에서 가장 큰 은혜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이요 가족입니다.

가정은 한 사람에 의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 있을 때에만 가정이 성립됩니다.

이 세상에는 60억이 훨씬 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빼시고 빼셔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한 가족 되게 하시고 한 가정 되게 하셨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섭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난 게 하시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아버지, 어머니를 예비하시고, 각각 다른 상황 속에 살아오신 두 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나게 하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셔서 생명의 텃밭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기 위해 자녀를 주셨고,

한 피를 나눈 형제 자매를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책임져 주심과 예비하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책임과 예비하심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칙을 알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가족간의 관계를 거리로 맺어 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같은 시간에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먼저 만드신 후에 그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지 않아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만드신 시간이 다르고 만드신 목적도 같지 않습니다. 만드신 방법도 다릅니다.

남자는 흙으로 형상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명이 되게 해 주신 반면,

여자는 남자를 잠들게 하신 후 갈빗대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거리, 목적의 거리, 방법의 거리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결코 같을 수 없고 행동이 동일 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에게 두신 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와 다른 점, 차이점,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1촌의 거리를 두셨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로부터 태어난다 할지라도 부모와 같을 수 없습니다.

1촌 거리만큼 자식은 부모와 다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거리, 나와 다른 점, 그것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는 1촌의 거리야말로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책임지심과 예비하심이 역사하는 터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 사이에는 2촌의 거리를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서로 닮을 수는 있으나 역시 동일 할 수는 없습니다.

형제끼리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이 2촌의 거리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형제가 크고 잘 되었다고 다른 형제에게 부모처럼 행세할 수는 없습니다.

형제와 형제 사이에 있는 2촌의 거리, 그 거리가 형제 모두를 책임지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마당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족과 가족 사이에 두신 이 거리를 무시한 채

이 거리로부터 벗어나 버리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이 거리를 무시하여 거리 자체를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 또한 그릇된 일입니다.

길가에 심은 가로수를 너무 가까이 심어 놓으면 크게 되면

가지와 가지가 서로 뒤엉켜 서로를 찌르는 칼이 됩니다. 일정한 거리가 아름다움이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사이에 있는 거리를 존중하지 않을 때,

상대를 내가 생각하는 틀 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할 때, 남편과 아내는 서로 흉기가 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는 1촌의 거리를 허물어 버릴 때,

그래서 서로 상대방을 자신의 복사품으로 만들려 할 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관계가 됩니다.

형제와 형제 사이에 있는 2촌의 거리를 파괴할 때,

형제는 남남보다 더 못한 관계로 전락합니다.

거리에 심겨진 가로수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완전한 성장을 꾀하기 위해서는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필요한 거리가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께서 가족으로 맺어 주신 가족들이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각 가족 사이에 두신 거리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거리, 부모와 자녀의 거리, 형제와 형제의 거리.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그 거리를 무시하고 내 가족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책임지심이요 예비하심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2.

본문 말씀입니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을 찾아왔던 헬라인 몇 명이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뵙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빌립을 찾아가 요청했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안드레와 빌립이 그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23,2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헬라인에게 긴 말씀을 하시지 않고 믿음을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믿고 따른 다는 것은

스스로 죽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데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이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죽어지는 밀알이 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죽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열매가 풍성히 거두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반에 적용되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가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죽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가족과 나 사이에 있는 거리를 절대로 존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죽이지 않는데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계획,

다른 뜻을 품고 있는 내 가족을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내가 만든 틀속에 끊임없이 내 가족을 몰아넣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설정한 틀 속으로 자녀들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자기의 틀 속에 자녀들을 맞추려 합니다.

그 틀 속에 자녀들을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시도가 성공하는 동안에는 지극히 만족해하면서, 내 자식은 참 착한 자식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과의 사이에 있어야 할 1촌의 거리를 파괴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식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억눌리기만 하던 자식이 어느 날 부모가 설정한 틀을 벗어나 그 틀을 부정하면서

부모에게 항거하기 시작하면 그 자식은 절대로 더 이상 부모에 의해서는 통제되지 않습니다.

억눌릴 때로 억눌린 용수철이 튀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6;4절을 통해

이 땅의 부모에게 네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자식들이 언제 부모에게 노합니까? 부모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

부모와 자신의 차이점이 무시당할 때입니다.

부모와 다른 자기 인격이 무시당할 때입니다.

부모와는 결코 동일 할 수 없는 자기 존재의 독특성과 독립성,

고유함과 자유함이 짓밟힐 때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부모는 자식과 나 사이에 있는 1촌의 거리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식과 나 사이에 있는 다른 점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자식의 존재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이 죽는 고통이요 아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스스로 죽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자식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책임지심, 예비하심으로 성숙해집니다.

 

자식들 중에는 부모와 자신 사이에 있는 1촌의 거리에서

아예 벗어나 타인 대하듯 대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과의 1촌의 거리를 무시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의 1촌의 거리를 벗어나 그 거리 자체를 외면해 버리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부모보다 신 시대를 살아는 신세대로서 자식이 부모와 다른 점을 인정받기 원하는 것처럼,

우리보다 더 오랜 세상을 살아온 우리의 부모 역시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의 생각은 자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계획이 다를 수 있습니다.

표현 방식도 다르고 삶의 양식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것이 다 달라 보인다 할지라도 부모의 중심은 오직 하나,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임을 자식이 아는 것이 지혜요 믿음입니다.

 

부모와 나 사이에 있는 1촌의 거리를 내 생명처럼 존중히 여긴다는 것,

그 거리에 대한 나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는 것,

분명 자식인 내가 죽는 고통이요 아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기꺼이 되어질 때,

우리 부모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책임지심과 예비하심의 은총이 될 것입니다.

 

확실히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가정과 가족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은혜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