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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9_결론을 아는 삶은 흔들리지 않는다

글쓴이 : seanho 날짜 : 2020-02-27 (목) 03:13 조회 : 338

2020226() 새벽기도회

 

 

본문 : 창세기 391-23

 

 

 

먼저 2-3절을 주목해 보도록하겠습니다.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저는 사실 요셉의 이야기, 특별히 창세기 39장을 볼 때 마다

가장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방금 제가 다시 읽은 이 말씀의 상황이 잘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 등장하는데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형통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모두가 형통한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런데 잘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함과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함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여,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는데 지금 현실의 삶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그의 주인 애굽 사람 집에 있으니.” 그에게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2절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정리해보면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가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은혜로 요셉은

노예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3절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주인이 그를 보니까 여호와께서 요셉의 범사,

모든 일을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주인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노예가 형통하면 얼마나 형통하겠습니까?

노예가 아무리 형통해도 주인인 자신의 형편이나

상황이 형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의 주인이었던 보디발은

그렇게 자신의 노예의 삶에서 형통함을 발견할 만큼

요셉이 형통했다고 합니다. 참 이상하죠?

노예 신분인 것부터가 불행한 것인데

도대체 뭘 보고 형통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왜? 요셉의 삶이 범사에 형통하다고 기록할까요? 

 

물론 이 이후의 말씀을 이어서 보시면,

요셉은 그래도 종들 중에서는, 노예 중에서는 잘 풀리게 됩니다.

주인의 눈에 들어서 가정 총무가 되었다는 것이죠, 출세한 것입니까?

쉽게 말해서 이런 상황 아닐까요?

우리 자녀가 사업을 크게 벌이다가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의 삶이 형통해서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형통한지 운 좋게 서울역 노숙자들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뭐가 좋습니까? 요셉의 모습은 세상 적으로 보면

전혀 형통함고 없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장점도 없어 보이고요,

복도 지지리 없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그도 그런 것이. 오늘 말씀 중반부에 가면,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죠?

노예로 잘 풀려서 가정 총무가 되어서 좀 편해지나 했는데,

하필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좋아해서 유혹을 합니다.

요셉은 정직하게 유혹을 물리쳤는데,

억울하게 강간미수 범으로 감옥에 갇혀 버립니다. 아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정직하게 행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상을 주셔도 모자란 상황인데,

하나님은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억울하게

갇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십니다.

이쯤 되면 저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 이런 시선으로 요셉의 이야기,

이 창세기 39장을 열심 읽을 까봐 걱정입니다.

하나님 믿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대단한 인생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줄로 알았는데 이게 뭐냐며,

하나님 믿으려고 했더니 안되겠다고 할까봐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의 결론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요셉의 말씀을 보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게, 신실하시게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구원자로 세우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큰 민족을 이루는 과정을 준비하신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요셉도 자신의 인생의 결론을 알고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을 받고, 노예가 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절망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 까요? 요셉도 사람인데 얼마나 이 과정이,

이 여정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요셉은 억울하게

모든 명예를 잃고 강간미수범이라는 치욕적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이 바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이 주시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379절입니다.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사용하시고, 자신의 삶이 단순하게

노예로 끝나는 삶이나, 감옥에서 억울하게 갇혀서

죽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모습을 통해서 발견하는 하나님 안에 형통한 자,

복 있는 자는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주시는

결론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 수준의 복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결론이 하나님 나라에 영화로운 삶이라고 할 때

우리는 현실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를 견디고,

통과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종착역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경유지를 지날 때 잠깐 불편하다고 그대로 내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요셉과 같이 분명한 결론이 주어졌습니다.

에베소서 25-6절입니다.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께서 우리 우리를 구원하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으시는 인생의 결론을

믿음으로 소유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를 이기는 믿음의

능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손잡으면 그 집에서

조금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요셉의 종착역은

보디발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죄와 손잡으면 이 땅에서는 조금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종착역은 이 땅이 아닙니다.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꿈꾸면

담대히 이기며 나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