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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_36장 하나님의 사람이 누리는 복의 차이

글쓴이 : seanho 날짜 : 2020-02-23 (일) 05:46 조회 : 441

 

2020221(금) 새벽기도회

본문 : 창세기 361-43

 

오늘 말씀에는 오랜만에 족보의 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족장 야곱의 이야기에서 요셉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부분에 부록과 같이 에서의 족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에서의 족보를 통해서, 야곱이 장자 권과 축복을 가로채고

하란으로 갔다가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동안

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하나님의 도움 안에서 가정을 이룰 동안

진짜 장자였던 에서는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장자의 복을 빼앗겨서 망했을까요?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지만 번성합니다.

7절과 19절 말씀을 보면 그의 인생의 세상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7절입니다.

7.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19절입니다.

19.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이 말씀을 보니까, 에서도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겼지만

이상하게 그도 야곱만큼이나 풍부한 소유를

거느리는 세상 적으로는 성공한 모습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니까, 에서도 야곱이 민족을 이루는 것처럼,

그도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의 자손들이 족장이 됩니다. 여러 족장들이 나오고,

에돔의 왕들도 그 가문에서 나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더 이상 복을 빌어 줄게 없었는데,

그래도 에서는 그렇게 번성하게 되어 집니다.

심지어 야곱과 비교해 보면 어쩌면 에서가

야곱보다는 고생도 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았지만 피난생활을 하였지만,

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승승장구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에서와 야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축복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대체 무엇일까요?

그 것은 이스라엘과 에돔이라는 결과물로 확인 할 수 있는데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민족을 이루었는냐,

하나님과 상관없는 민족이 되었느냐. 라는 것이 가장 큰 복의 차이입니다.

자 야곱이 왜 그렇게 계속해서 피난 생활을 합니까?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신중하게 아내를 맞이하러 가죠?

멀리까지 가서 이방 여인이 아닌 가문의 여인을 만납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먼 길을 갔고, 그 곳에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냅니다.

반면에 에서는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에서는 장자 권을 잃기 전에 결혼을 했는데요.

이삭은 결혼의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는데,

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가나안에서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2.3절입니다.

2.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3.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에서는 이삭 아버지는 결혼에 대해서 분명

가문의 여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결혼관과는 상관없이 가나안의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가문의 여인도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들입니다.

그리고 5절 말씀을 보면, 가나안땅에서 결혼을 하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낳습니다. 에서는 그렇게 가나안땅에 정착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물들지 않아야 한다고 한 그 땅,

머물지 말라고 한 그 땅에서 머물면서 가정을 이루고, 재산도 많이 얻고 잘 살았다.

라는 것을 에서의 족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에서도 가정도 이루고,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가문을 사용하시지는 않습니다.

야곱을 섬기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돔이라는 민족과는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하였을까요?

왜 에서의 에돔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함께하십니까?

그 이유는 에서는 신앙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치를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번역6] 에서는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집짐승과 또 다른 모든 짐승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산을 이끌고,

아우 야곱과는 좀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갔다.

 

에서도 재산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함께

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쿨하게 하나님의 땅을 떠나서,

사해 아래 세일산에 자리를 잡습니다.

에서는 왜 굳이 헤브론에 살아야해? 가진 것도 많고, 가나안땅도 괜찮은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아니어도 이만큼 성공했는데?

나는 어디든 괜찮아.”라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에서는 자기의 취향대로 골라갔지만,

야곱은 자기의 취향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뜻대로 선택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삶의 부분이 하나님과 상관있는,

하나님께 주목하는 야곱의 삶을 사용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준은 여전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조금 더 철저하게 하나님 기준으로

살고자 하는 삶을 하나님은 사용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믿지 않는 사람도 복이 있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받은 복, 누리는 복의 모습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삶의 길과 삶의 결은 다릅니다.

에서는 쫙 쫙 뻗은 대로와 같이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하며 평탄한 삶을

산 것 같은데, 아브라함도, 야곱도, 앞으로 등장할 요셉도

그들의 삶에 길이 참 구불구불 합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들의 구불구불한 이 길이,

돌아, 돌아 늦게 성공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기 길이 최선이었다는 것입니다.

내 취향대로, 내 의지대로 가면 더 빠른 것 같지만,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구불구불한 길 위해서

하나님께 배우고, 도움을 받고, 하나님이 정하신

결론을 만나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