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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3장_다리를 절었더니 에서가 변했다

글쓴이 : 느헤미야강 날짜 : 2020-02-18 (화) 21:42 조회 : 510

20200218() 새벽기도회

 

다리를 절었더니, 에서가 변했다 <창세기 33>

 

미스바에서 야곱과 라반이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분노한 라반을 돌이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가장 긴장되었던 일을 해결했습니다. 이제 가나안땅에 도착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남이 있습니다. 에서와의 만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 재산, 가족이면 다른 데 가서 살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위험 무릎쓰고 가나안땅에 가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을 지향할 때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여러 모양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라반을 떠나올 때 하나님이 라반을 경고하셨습니다.

마하나임, 하나님이 군대되어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나안땅에서 에서를 만나려 할 때

, 나귀, 양 떼 등 가축으로 마음 얻으려 하나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두렵고 답답해합니다.

 

32;24절에, 얍복강에 홀로 남아 하나님앞에 서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과 씨름 하던 중 허벅지 관절이 위골됩니다.

육체적인 씨름? 혹은 기도의 씨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요청하고 겨루어 이깁니다.

실은 하나님이 져 주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32;32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쳤다는 단어의 히브리어 라가는 손으로 만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졌는데 위골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진 것이 아니라 져 주신것입니다.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그 빛은 그동안 본 빛과는 다른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안에서 야곱이 거듭 났기에 달랐을 것입니다.

달력이 바뀌었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달라지면 그것이 새 날이고, 새 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안 바뀌면 매일 매일이 헌 날입니다.

내가 바뀌고, 가치관 바뀌어야 새날, 새 해 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야곱에게 이 날은 새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새해들어 벌써 50여일이 지나갑니다.

이 날들이 지난 연말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 없다면

우리에게 2020년은 새로운 새, 새로운 내일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삶의 습관을 바꾸기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게 하시는 주님을 보며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주님과 겨루어 이겼습니다. 주님이 져 주셨습니다.

야곱이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날과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속이는 자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해는 어제 보았던 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야곱이 절었더라’(32:31)고 말씀합니다.

야곱의 기도제목이 나 살려달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중에 허벅지를 만지시고 위골되게 하셨습니다.

새 날이 되었는데 건강한 몸이 불구자요,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응답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장애우가 되게 했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33;1~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가족들을 뒤로 두고 맨 앞에서 걸어오는 것을 에서가 보았습니다.

형체는 엉망입니다. 다리는 저는데 몸을 일곱 번 굽혀가며 형에게 나아옵니다.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고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동사를 보십시오.

달려와서, 안고, 어긋맞추고, 입맞추고, 우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야곱은 부자입니다. 비단옷에 기름기가 철철 넘쳤다면 칼 맞았을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에게서 뺀질 뺀질 한 모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앞의 야곱은 밤새도록 기도했으니 초췌했을 것입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다리는 절뚝, 머리를 굽혔다가 일어나고를 7번씩 합니다.

뼈가 위골되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요?

야곱은 간절히 형에게 나가고 있습니다.

 

한 핏줄이되 쌍둥이입니다. 같은 날 모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같이 잘 놀았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늘 속임당하고, 사기꾼 같았는데 그 모습 보고 형제애가 솟구쳤던 것입니다.

건강한 몸이었다면 에서의 반응은 달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모습으로 응답하셨습니다.

7;9-10절은 세상 부모도 떡을 달라는 자녀에게 돌을 주는 부모없다.

이 예수님께서 악한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는 것중에는 사실 없어도 되는 것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정말 귀한 것은 다 주셨습니다.

, 공기, 태양 등등 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필요한 것 왜 안주실까요?

우리는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가나안에서 기업 무를자되기 원했으나

하나님은 종, 옥살이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허벅지가 위골된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에게 그것이 애굽 총리를 위한 길 이었듯이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이끄시는 뜻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이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지 못한 더 좋은 길, 방법, 뜻이 있으십니다.

그 하나님이 내게도 뜻 이루실 것을 믿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구하는 대로 받는 것이 최고가 아닙니다.

야곱처럼 살려달라 할 때 다리를 절게 하는 방식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야곱이 기도할 때 살려달라고 한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에서앞에서 그가 살게 되었습니다.

다리를 절게 된 것이 살게하신 방법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하실 때가 있습니다.

야곱, 그땐 몰랐지만 깨달은 후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그 야곱의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