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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7-16 생존인생, 성숙인생

글쓴이 : 느헤미야강 날짜 : 2019-12-20 (금) 00:32 조회 : 65

20191219() 새벽기도회


생존인생, 성숙인생 <4:7-16>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존만 하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기여하는 인생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만 하다가 인생의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 세상이 보다 나은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는

삶의 발자취를 남기고 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이런 이들을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존 인생><기여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그것을 성경적인 단어로는 성숙이라고 일컫습니다.

 

인간됨의 의미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성숙입니다.

성숙에 의해서 우리는 생성하는 인간/창조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하루 하루 존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영적 성숙>이라고 부릅니다.

성숙한 사람도 먹어야 살고 마셔야 살고 입어야 삽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하여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해야 할 과제는 <영적 성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영적 성숙을 이루어 기여하는 인생을 살수 있을까요?

 

1.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희랍어 카리스마(karisma)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은 카라(kara)로서 기쁨이란 뜻을 갖습니다.

은사에 맞는 일을 하면 누구나 신바람이 나고 즐겁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즐겁고 좋아하는 것 두 가지가 다 만족되어야 은사라고 할만 합니다.

저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문제는 제가 잘하지 못하니 제 은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의 은사에 맞는 일,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면서

저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밤을 새도록 좋습니다.

이 은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기여해야 한다는 멈출 수 없는 열정이

저를 목양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이 은혜의 선물이 바로 은사입니다.

8-10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이 땅 만물 가운데

주의 뜻을 충만하게 이루어 가시기 위해 당신의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11절은 구체적인 몇 가지 지도자들에게 주신 은사들을 열거합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그 밖에도 무수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은사를 알고 자기가 잘 할 수 일로 기여할 때

자신도 삶의 의미를 경험하고 세상도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2. 자신을 넘어 서로를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은사를 사용한다고 말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은사 사용이 자기만족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사역의 궁극적인 대상은 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는 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은사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상처 낸다면

그는 기독교 사역의 목표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영적 성숙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2절 말씀은 바로 이런 기독교 사역의 본질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희랍어에 카타르티스모스’(katartismos)인데

이 단어는 의학적인 술어로 뼈를 맞추어 제자리에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을 잘 회복시켜 그로 하여금

참된 봉사자의 자리에 서게 하는 일이 사역의 본질입니다.

기독교 사역은 내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나의 은사,

내가 할수 있는 일로 섬겨 그의 영적인 회복을 돕는 것이 사역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사역의 이름으로 이웃을 상처내고 있다면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기 까지 차라리 사역을 유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그들을 섬기는 천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만난 여러분이 저의 천사가 될 수 있고, 저 역시 여러분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사역의 본질은 나 자신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성숙한 자로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3.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12절의 우리가 우리 이웃들을 온전하게 하는 섬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세운다는 말은 영어로는 빌딩(building)입니다.

세우는 것 곧 빌딩의 반대는 허는 것곧 파괴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질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내에서 섬김을 수행할 때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섬김으로 우리 공동체가 좀 더 든든하게

좀 더 아름답게 세워져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을 빙자한 섬기는 방식의 무례로 인하여

공동체가 흔들리는 몸살을 앓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여러분은 공동체를 헐거나 흔드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본래 흔드는 일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22:31에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요구하였으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도모르게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공동체를 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의 세움을 위해 나 혼자만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지혜 곧 팀 워크의 기술을 또한 익혀야 합니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의 교훈이 그 내용입니다. 16절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바울은 이런 아름다운 연합을 위해 다시 한번 성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바울은 이런 성숙을 위해 사랑과 참된 행함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공동체의 지체들을 사랑으로 세워야 하지만

때로는 진리에 입각한 책망을 통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르게 세워갈 때

진정한 성숙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4절이 경고한 어린 아이의 오류와 유치함을 벗어나는 성숙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영주의 에세이 <동그라미 선생님>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주부였던 이 자매는 길에서 여고 동창생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고교 담임이었고 수학 선생님이었던 분의 부음을 듣습니다.

그녀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분(지주 꾸중을 듣고, 벌을 받은 기억 때문)이어서 그

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별 감정 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영주야 그 선생님이 담임 시절 교탁에 반 학생들 사진을

유리아래 항상 두고 있었는데 그 중 몇 학생의 얼굴에 동그라미 표가 있었는데

너와 내 얼굴에 동그라미가 있었던 것을 아니?“라고 묻습니다.

뻔하지 너와 내가 찍혔던 것이겠지하고 말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주부가 그후 몇 날이 지나간 어느 날 집안 정리를 하다가

여고 시절 고교 잡지 한권을 발견합니다.

거기에는 바로 그 담임 수학 선생님이 기고한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의 제목이 <동그라미 선생님> 이었다고 합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수학의 모든 기호 중에 동그라미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원만하고 모가 없는 둥금은 나의 학생들에게 내가 기대하는 인격의 목표입니다.

나는 나의 학생들이 공부만 잘 하고 수학 문제만 잘 푸는 학생으로

교정을 떠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동그라미처럼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 사회에 나아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거기까지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자리에 무너져 대성통곡으로

이런 결단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저를 꾸중하시고 저를 책망하신 선생님,

그 마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저 이제부터라도 동그라미 인생, 동그라미 제자가 되겠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드려야 할

우리의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 닮은 성숙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